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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이긴 긍정의 힘, 유희관 '뜨거운 안녕'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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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이긴 긍정의 힘, 유희관 '뜨거운 안녕' [SQ포커스]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2.01.20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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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야구 인생이 그랬다. 편견과 싸워왔다.”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두산 베어스 좌투수 최다인 101승. 굵직한 커리어를 남기고 떠나는 ‘모닥볼로’ 유희관(36)의 말에 기자회견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마이크가 말썽을 부리자 던진 재치 있는 한마디. 마이크도 자신에게 편견을 갖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늘 그랬듯 특유의 재치가 담겨 있는 말이었지만 그 안엔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복잡한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유희관은 20일 서울시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 생활을 마치는 소회를 밝혔다. 2009년 프로 데뷔 후 정들었던 잠실구장, 친정팀 두산과 공식 이별하는 날. 유쾌함의 표본과 같은 유희관이지만 이날만큼은 마냥 밝을 수 없었다.

두산 베어스 유희관이 20일 홈구장 잠실구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돌이켜보면 유희관 만큼 확실한 개성을 갖고 있는 투수도 없었다. 연예인 뺨치는 입담과 ‘핵인싸’ 같은 성격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시속 130㎞도 되지 않는 공으로 프로에서 이만한 커리어를 쌓은 투수는 앞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프로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산 입단 후 큰 기회를 얻지 못했던 유희관은 국군체육부대(상무)를 거친 뒤 김진욱 전 감독의 신임 속에 2013년에서야 조금씩 기회를 늘려갔다.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오른 선발 마운드. 유희관 커리어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경기. 스스로도 프로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는데, 이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발승을 따낸 유희관은 이후 승승장구했고 베어스 투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유희관은 “그때 1승, 그 1이라는 숫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101(승)이라는 숫자도 있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뒀다. 통산 성적은 101승 69패 평균자책점 (ERA) 4.58. 다소 아쉬움도 있었으나 3점대 ERA를 3차례 기록했고 우승반지도 3개나 수확했다.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101승을 챙긴 유희관. 팀 좌투수 최다승이라는 타이틀을 남긴 채 유니폼을 벗게 됐다.

 

그러나 간절히 원했던 국가대표의 꿈은 번번이 무산됐다. 역시나 편견 때문이었다. ‘그 구속으로는 국제무대에서 통할 수 없다’는 인식이 야구인들 사이에 짙게 깔려 있었다. 프로무대에서 몸소 증명을 해냈음에도 그를 향한 시선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스스로도 아쉬웠던 장면으로 꼽는다. “(전성기 시절 국가대표에 뽑혔다면) 자신은 있었다. 잘했을 것 같아 한편으론 아쉽다. 공이 느려 어느 정도 통할지 의견도 분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긍정의 힘으로 극복했다. “아쉬움이 있지만 한편으론 내가 부족했기에 뽑히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대표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느린 속구’로 프로에서 100승을 달성했다는 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구를 거듭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따라 붙은 수식어가 ‘느림의 미학.’ 유희관은 “그 말만으로도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좋은 표현이자 애칭”이라며 “프로에 와서 느린 공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었다. 주변이나 여기 계신 분들도 1,2년 더 지나면 안 통할 것이라 했지만 안 보이는 노력으로 인해 은퇴 기자회견까지 할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 주위의 시선을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 또한 8년 연속 10승, 100승 기록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팬 여러분들의 편견을 조금이나마 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나 혼자 이뤄낼 수 없는 기록이었다. 좋은 동료들과 감독, 코치님들을 만났기에 가능했다. 너무 뻔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혼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은퇴 기자회견도, 웃으며 행복하게 야구 인생을 마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고동락을 함께 한 김태형 감독(오른쪽)도 자리를 찾아 떠나는 유희관의 길을 축복했다.

 

지난 시즌 부진했으나 올 시즌 스트라이크 존이 확대될 예정이기에 유희관의 반등을 기대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희관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사람이라면 마지막을 생각한다. 작년에 많이 부진했고 2군에 있는 시간도 많았는데 그때 많은 생각을 했다”며 “팀이 좋은 흐름으로 가고 있고 좋은 투수들도 많이 성장 중이기에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내가 방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으로 은퇴해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은퇴 배경을 설명했다.

은퇴를 결정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남긴 그는 선수 생활 내내 따라붙었던 ‘안티팬’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에 대한 편견을 끝내 거두지 못하고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봤고 그 중 일부는 도 넘은 공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희관은 “예전에 인터뷰 때도 말했는데 악플보다 무서운 게 무플이다.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 분들도 애정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했다고 믿는다”며 “그런 분들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내 팬이 아니더라도, 모두 나를 좋아할 수 없지만 넓게 보면 야구팬이기에 야구팬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털어놨다.

경기장 밖에선 늘 유쾌했지만 누구보다 야구에 진심이었고 때론 후배들에게 채찍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속 뜻을 모두 알고 있었다. 떠나는 그에게 박수를 쳐주는 이들이 줄을 지었다.

유쾌한 성격으로 재치 있는 입담을 자랑하는 유희관이지만 선수 생활을 은퇴 소회를 밝힐 때 만큼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유희관은 “이 자리를 통해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잔소리를 엄청 했다. 그런데도 모두 연락이 왔다. 같이 지냈던 (양)의지나 (김)현수, (이)원석이, (최)주환이 다 연락이 와서 수고했다고 말해줬다”며 “한편으로는 후배들을 위해 좋은 말을 더 많이 하고 더 챙겨줬으면 어땠을까 싶다”고 아쉬워했다.

‘제2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입담도 뛰어나고 영리한 선수로 유명했던 그를 찾는 이들이 많다. 유희관은 “야구를 그만 뒀을 때 할 일이 없고 야구장에 출근하지 않는 게 막막하고 힘들 거 같았는데 그만둔다는 말을 듣고 찾아주는 분들이 많았다. 감사한 일”이라며 “해설위원을 할지 방송을 할지, 코치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어떤 일이 주어지든 열심히 할 것”이라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욕을 나타냈다.

행복하게 커리어를 마칠 수 있어 만족스러워 하면서도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감추지 못한 유희관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야구선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언젠가 야구장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졌던 것에 비하면 화려한 야구인생이었다. 많은 걸 이뤘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많이 아쉽지만 앞으로 언제 어디서 보든 웃는 얼굴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 갈테니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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